6월 16일 - 반 년이 지난 후, 기록의 중요성
아.
내가 지금 쓰는 이것이 과연 일기라고 할 수 있을까
자격이 될까
저렇게 온갖 똥폼을 다 잡고 하나 써놓고
반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돌아오다니 ㅋㅋ
돌아오게 된 계기도 기가 찬다.
까마득히 정말 까마득히 잊고 살다가, 정범이가 디엠으로 "너도 블로그 써줘."
하물며 그때조차 아무런 기억이 나지 않았던 나는, 앗 재밌겠당 하고 정범이의 블로그 글들을 한참 읽다가
정말 한참을 읽다가
나 또한 블로그를 시작하려고 했었다는 기억이 문득
저 멀리 아주 멀리 까마득한 곳에. 머릿속 한 켠, 먼지 쌓인 그곳에 문득... (대체 당신의 머릿속이 언제부터 그리 광활했었다고)
기록의 중요성은 일찍이 느꼈었다. 그래서 나도 기록을 시작하려 했던 거고.
말이 나온 김에 지금 느껴지는 기록의 이점에 대해 한번 적어보겠다.
1) 당신은 바보라 많은 걸 너무 빠르게 잊는다 (알코올 치매가 의심될 정도)
하지만 당신의 그 순간들을 늦기 전에 되돌아보며 정리하면
당신은 그 순간들을 더 잘 기억할 수 있고, 시간이 많이 지나 기억들이 흐릿해졌을 때 회고할 수도 있다.
사진 속 어려 보이는 내가 문득 궁금해지던 순간들이 있었지 않은가. 그때의 나는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떠한 마음으로 지내왔는가가 궁금했지 않았는가. 기록은 과거의 나와 미래의 내가 소통할 수 있게끔 직접 길을 터주는 것이다.
2) 당신은 언어를 잃고 싶지 않다
언어를 잃는다는 것은, 나를 인지하고 표현하는 방법을 잃는 것이다.
지금의 내 언어 수준은 중학교 3학년에서 멈춘 것이고, 이미 나를 표현하는 방법을 잃어본 사람으로서 감히 단언할 수 있는 건 우리는 결코 언어를 잃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그것은 내 삶 전체를 잃는 것과 같이 느껴진다 - 그렇다면 나는 과연 내 삶을 소유, 아니 나로서 내 삶에 제대로 존재하긴 했던 것일까)
인간은 사회의 동물. 의사소통은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정말 중요하다. 의사소통을 통해 우리는 나를 표현하고, 남들을 인지하고, 이를 통해 우리 자신을 다시 인지한다. 이렇게 내가 지금 어떤 사람인지를 알고,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를 알고, 그를 지향하며 살아나가는 것에는 의사소통이 불가결하다.
나를 그리고 세상을 인지하고 싶다면 말하는 것도, 글을 읽고 쓰는 것도 꾸준히 연습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을 멈춘 그 순간의 수준에 영원히 머무르게 된다. 곧 만 24살이 되는 내가 지금껏 중학교 3학년의 수준에 머물러왔던 것처럼.
소통을 하는 방법에는 음악, 미술, 연극, 무용 등 셀 수 없이 여러 가지가 있는 것 같지만
제일 기본 시 되는 것이 (가끔은 너무 당연해서 잊히기도 하는 것이) 말하기와 쓰기인 것 같다.
말하기를 통해 나의 주변인들과 매일 소통하는 것처럼
글을 읽고 쓰며 우리는 과거 혹은 미래의 우리와, 타인과, 이 세상의 어느 한 시대에 살았던 작가들과 소통할 수 있다.
3) 당신의 ADHD를 고치는 데에 도움이 될 것 같다
언제부터인지 당신은 남들의 말과 글에 집중하지 못하고
당신이 하고 있는 말임에도 불구하고 집중하지 못하고 (말하고자 했던 요지를 잊고 다른 주제로 끊임없이 샌다든가)
당신이 쓰고 있는 글임에도 불구하고 집중하지 못했다 (지금 쓰고 있는 문장에 집중하지 못하고 다다다음 문장을 방문한다든가)
내가 나의 소리를 낼 줄 알고 집중할 줄 알아야 그 다음이 있다고 믿는다.
내가 이렇게 모든 것에 대한 집중력을 잃고 매 순간 방황하게 된 것은
제일 기본이 되는, 내가 나를 표현하고 들어주는 방법을 잊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를 기록할 때만이라도 나에게 온전히 집중해보자.
어느 하나에라도 온전히 집중할 수 있다면, 다른 것들에도 분명 집중할 수 있을 것이다.
4) takeaway를 뽑아낼 수 있다 - 더 나아지는 삶을 살 수 있다
나의 순간들을 정리하면, 있었던 일을 단순히 기록하는 것을 넘어서서 그 순간들을 여러 번 되돌아보게 되니까 그때 진정 무슨 일들이, 무슨 연유로 있었는지를 고찰할 수 있기에 새롭게 깨달은 사실이나 배운 점들을 되새길 수 있다.
배운 점까지 정리하며 (내 삶을 성찰하며) 살아가니까 어제의 나보다 나아지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당신아 제발. 당신이 본인에게 집중할 수 없다면
당신이 당신의 소리를 들어주지 않는다면 대체 누가 당신을 들어줄 수가 있겠는가.
하물며 다른 사람의 소리는 어떻게 들을 수가 있겠는가 (이 순간에도 당신은 왜 이렇게 스스로를 하대할 수밖에 없는가)
당신아 나는 더 이상 당신을 일말의 발전 없이 꾸준히 게을러터진 인간이라고 여기고 싶지 않다.
나는 당신이 생각하는 기준에 어느 정도는 준하는, 괜찮은 사람으로 남은 일생을 존재하고 싶다.
무튼 적당한 꾸짖음과 동시에
어찌 되었든 기억해내고 돌아와 이 블로그를 다시 이어가려고 하는 당신의 지금 이 시도를 높게 사본다.
나는 당신을 조금 알기 때문에, 당신이 결코 돌아오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안다.
돌아오게끔 계기를 마련해준 존경하는 나의 친구 정범이에게 고맙고 (shout out to JB)
살면서 아직 길게 글을 써보거나 꾸준하게 기록을 남겨본 적이 없어 많이 서투르겠지만
부담 없이 가볍게 기록해보려고 한다.
부끄러워도 이게 지금의 나니까
어수선한 지금의 나를 어수선하게나마 표현해보려고 한다.
반년 전과 비교해보면 이걸로도 꽤 나아졌다고 믿는다. 적어도 작년 말보다 행복하게는 지낸 것 같다.
기록하지 않았던 지금까지의 시간들도 틈틈이 고찰해보고
남은 2022년의 반년도 틈틈이 기록해 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