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파괴적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자기 파괴적인 성향을 꽤나 꾸준히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사춘기 시절에는, 화가 났을 때 내 붉은 피를 보면 나를 억압하고 있던 끈 하나가 툭 끊어지듯 기분이 나아졌고
성인이 된 후에는, 책임질 수 없거나 이렇게 하는 게 결코 옳지 않은 상황에 간헐적으로 내 자신을 던짐으로써 이 성향을 유지해왔다.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로, 그 다음날 숙취로 하루를 통째로 버릴 정도로 술을 먹고, 기억이 나지 않거나 책임질 수 없는 크고 작은 실수들을 하고, 그런 방황들을 통해 해방감을 느끼기를 반복했다.
또한, 나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불편함을 느끼지만, 그런 불편함들을 조금은 좋아했나 싶은.
중독까지는 아니어도 그 적당한 긴장감과 자극을 좋아해 그 세계에도 발을 걸쳐놓는 것.
술을 먹으면 원하지도 않는 말 혹은 행동을 하게 될 것을 알면서도
기분이 안 좋으면 술을 먹으려 하고 기억을 잃고 사고를 침으로써 해방감을 느끼고.
붉게 피어오르는 피도, 과음을 하고 느끼는 고통도, 살아있다. 살아있구나, 를 느끼기 위한 수단이었다.
(시간이 쳐남아돌고 삶이 지루했는가 보다. 울화통이 치미는...)
전문가가 아니어서 아직 더 이상의 분석이나 해석은 어렵지만, 확실한 건 이런 자기 파괴적인 성향은 건강하지 않다. 억압되는 게 있었으니까 다른 일들을 통해서의 해방감 및 구원을 찾는 건데,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아닐뿐더러 나를 순간적으로 함부로 하고 해하니까.
무튼 이제까지의 나는 이 성향을 꾸준히 (하지만 가끔씩) 보여왔는데, 요즈음에 변하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나는 이 변화에 집중하고 있다.
전 애인을 만났다. 장거리 연애를 하고 있었으니 헤어진 지는 6개월 만에, 못 본 지는 1년 만에 보는 것이었다.
재밌었다. 적당히 마음에 들지만 모든 게 마음에 들진 않는 그와의 시간은 불편했지만 재밌었다. 맞다, 나는 그가 반가웠지만 불편했고, 편했지만 새로웠다. 익숙한 것에서 오는 편안함과 익숙하지 않은 것에서 오는 불편함, 두 가지가 다 있었다.
내 것이었던 것이 내 것이 아니어진 것에서 오는 신기함과 당혹스러움. 내 것이 아니라 아쉽지만, 가짐으로써 수반되는 변화와 책임은 감당할 수 없기에 책임질 수 있는 선까지의 이성적인 행동을 하는 것.
인간이 되어가는 건가. ㅋㅋ 누가 보면 동물 새끼였던 줄 알겠네.
그보단, 자기 파괴적 성향 없이 항상 이성적 사고 및 행동이 가능한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매력적인 사람이다. 부족했던 나를 (내 현 기준에서, 덜 인간이었던 나를) 힘닿는 데까지 사랑해줘서 감사하다.
그가 진심으로 사랑받고, 사랑하고, 행복했으면 좋겠다.
잊고 싶지 않으니 내가 그를 사랑했던 이유를 한번 정리해본다.
- 끼와 흥이 많다. 처음 보는 내 친구랑 길거리에서 춤추고... 리얼 out of nowhere
- 솔직하다. 인간(글쓴이 본인)이 앞에서 울고 있으면 웃겨도 참고 위로해줄 만도 한데, 웃기다고 웃으면서 동영상 찍는다.
- 본인이 사랑하는, 열정을 갖는 분야가 있다. (패션/의류/잡화 등의 디자인, 브랜드, 예술)
- 잘 들어준다. 내 이야기를 듣고 있지 않다고 느낀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기억력/주의력이 좋은 것 같기도. 내가 많이 안 좋은 건가.
- 같이 있으면 즐겁다. 킹 받는데 신기하고 어이가 없어서 웃긴 느낌. 대체 누가 사람 얼굴에 방귀를 뀜.
- 책도 읽고, 전반적으로 세상의 흐름을 따라간다. (역사/경제/시사 등)
미안한 게 많은 연애를 한 것 같다. 고마운 사람,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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